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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1-19 05:07
멀리 계신 선배님께 보낸 편지
 글쓴이 : 야오
조회 : 4,587   추천 : 15   비추천 : 0  
안녕하셨어요? ^^


   
아버지의 안부를 물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지난 달에 웃으며 하늘나라로 떠나셨어요.

암 판정 받은 지 일년이 넘었는데 실제로 고통 받으신 기간은

열흘 남짓이고 오빠가 남긴 연금을 두 번이나 받을 수 있을 시한을

맞춰주셔서 병원비 부담까지 덜어주고 가셨습니다.

잘해드릴 걸 그랬다...라는 생각을 매일 하지만

입관할 때 평화로운 아버지 모습 보고 차가운 살을 만지면서 한 생각은

뜬금없게도 '아버지 참 부럽다...'였습니다.

 

이렇다할 무엇도 남기진 못하셨지만 한 평생을 그럭저럭 후회없이 살다

평안하게 갈 수 있다는 건 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한 평생이란 정말 짧은 거구나...

매일 매일 후회없이 살자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짧고 덧없고 쉬이 지는...그래서 아름다운 꽃같아요, 생명이라는 건.

그래서 더욱 저들은, 그리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 치달리는 온 세상은

무엇을 위해 이런 모양을 갖고 사는 걸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마 기본적인 생각은 같겠지요.

인생은 짧은 거니까 크게 한 탕하고 튀자...이런거요? ^^

 

전 1년 넘게 MB씨에게 집중하던 정신을 만화에 모으고 있습니다.

내년 초 쯤에는 결과가 나올 거 같아요.

아마도 전...만화를 통해서 제 몫의 사명을 다할 것 같습니다.

최근의 흐름을 보며 저는 역사의 의미,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해 경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춥지 않고는 따뜻함을 알 수 없고 어둡지 않으면 밝음의 소중함을 알 수 없다 하죠.

스스로 파국을 선택하고 그것을 통해 또 다른 단계의 발전을 택하여

보다 많은 인간이 개인의 소중함, 유기적 연계를 깨닫는 스텝을 밟는 과정을

살아 생전 볼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현재의 시장 만능주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를 겪을 것이고

우리 세대의 과제는 그 대안을 생산하는 것이겠지요. 

 

미네르바씨가 그랬죠. 앞으로 30년은 비전이 없다고.

30년 후면 제 큰아이가 서른 여섯 살입니다.

그 때 까지 좋은 세상으로 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 수 있다면

30년 그까이꺼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싸워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솔직히 MB도, 한나라당도, 영남 패권주의와 대중의 지독한 이기심,

대한민국의 기괴한 공동체 의식이나 소 중화주의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포지션에서 할 일을 할 뿐이라고 생각해요.



상식과 몰상식의 싸움...여기서 최종 승자는 누가 될지 명약관화하니까요.

이 사회가 상식에 기초한 철학을 갖춘 시스템을 마련할 때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앞으로 30년 정도 모두들 정신 차리고 노력한다면

제 아이가 자신의 아이를 키울 때 쯤엔 좀 나은 날들을 맞을 수 있겠죠.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전 세대의 어른들이 노력한 결과로 우리가 풍요와 자유의 의미를 알았듯이

우리 세대의 노력으로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요.

부모님들이 했던 역할을 이제 저희 세대가 맡을 때인 것 같네요...

앞으로의 세상에 대해서는 누구의 책임도 물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 세대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지 않는 한.
 



대중의 세계 인식은 원시시대에서 크게 발전하지 않았다고 하죠.

모든 사람들이 단 한 걸음이라도 더 의식의 진전을 이루게 하기 위해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예술가는 예술가대로, 농부는 농부인 채로

자신의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엊그제 기사에서 읽은 김창완씨의 말이 가슴에 크게 남습니다.

 "대중이 원하는 건 음악이 아니라 목숨이다."

 예술이란 건 살아온 과정의 모든 것을 걸고 온 세상의 생명에 대한

 근본적 호의와 경의를 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배반당하고 배반하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나고..를 반복하면서

 저 역시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 시대를 살고 잊혀지겠죠.

 

 제 삶에, 제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마도...제 일을 통해 조금의 일조라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약속 드릴 수 있는 건 그것 뿐이지만

 못나고 부족하고 욕심많은 나라라도 이 나라가 가하는 부당한 압박이

 제게 살아갈 이유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기에 전 이 나라를 포기하거나

 떠나지 않을 겁니다. 살아 남아 이 자리에서 세상의 변화를 볼거예요.

 역사의 요동을 관람하기에 다이나믹 코리아는 VIP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전 저들이 골리앗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과 권력의 소유, 탐욕의 크기는 클지 모르나 영혼의 그릇이 작은

 딱한 사람들일 뿐이지요.

 결국 역사엔 단 한 줄, 멍청한 매국노로 남을텐데요....

 그들의 무지가 스스로의 무덤을 더욱 깊이 파는 것을 보며

 그 무덤에 함께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일평생 정신줄 놓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집니다.

 한 번 쯤, 어깨를 붙들고 눈을 마주보며

 "왜 사는지 알고 사세요?" 라고 묻고 싶긴 합니다만...

 뭐 물어본다고 해서 "신분제를 부활시켜서 내 자손들만 대대손손 잘먹고 잘살게 하려고." 라는

 솔직한 대답을 해주진 않겠지요. ㅎㅎ 


 

열정적인 분들이 보기에 저는 영원히 회색 분자이고 관찰자이며

현실과 거리가 먼 미지근한 이상주의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회색은 왠만해서 때타지 않고 쉬이 먼지 붙지 않으며

미지근한 온도는 모든 계절에 고루 환영받는 법이지요.

그래서 저는 저 역시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이 지구에서 필요한 멤버라고 생각한답니다. ^^ 


비록 제가 가진 그릇의 크기가 작을 지언정 가득 채우며 살겠습니다. 

영혼이 저마다의 모양대로, 자유로이 살아가도 부딪히거나 비난받지 않는

그럭저럭 괜찮은 나라를 먼훗날 손주들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뭐..어느 정도 세상이 평안해졌다 싶으면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모든 인간이 힘을 합쳐 또 다시 어이없는 상황을 만들어 내겠지만

그 역시 무의미한 일은 아니겠지요.

세계 시스템의 변화가 이루어 지는 과정에서 작은 부품으로 존재하면서

굳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존재하는 것, 살아 움직이는 것 자체만으로

무언가 힘을 보탰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대중이 진정으로 원할 때, 대중이 원하는 인물과 상황이

나타날 거라고 믿습니다.

역사가 늘 그러했듯이요.

부당하고 멍청한 일들 투성이지만 아직 이 정도로는

임계점에 다다르지 않은 모양이예요.

 

아무튼...MB정권을 통해 한 가지는 똑똑히 배웠네요.

통치 철학이 없는 정책은 어떤 수사를 갖다 붙여도 뻘짓이듯이

인생에도 철학이 있어야 행동의 근거가 생긴다는 거요.

 

일산에는 오늘 첫눈이 내렸답니다. 아주 조금이지만요.

계신 곳은 날씨가 어떤지 모르겠네요.

모쪼록 건강 유지하셔서 건강하게 일해주셔요.

전 언제나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필요할 때 한 손 더하는

착한 후배가 되겠습니다. 약속~ ^^ 

 

또 연락주세요.

편지 받는 것은 참 뿌듯하고 기쁜 일이랍니다. ^^

 

 
 

말그미 09-01-20 12:54
답변 삭제  
  아버지께서 좋은 곳으로 가셨군요. 늦게나마 아버님의 명복을 빌어드려요.
언니 글 보며 마음 속으로 뭔가 결연한 의지가 생김을 느낍니다.

"저희 전 세대의 어른들이 노력한 결과로 우리가 풍요와 자유의 의미를 알았듯이
우리 세대의 노력으로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요.
부모님들이 했던 역할을 이제 저희 세대가 맡을 때인 것 같네요..."

바로 이 부분에서요. 그동안 받기만 해온 우리도
이제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생긴 것을 기뻐해야겠지요?^^

좋은 글 온 마음으로 읽고 모셔갑니다.
새해엔 부디 좋은 일 많이 많이 있으시길 빌며
이만 물러갈게요. 무조건 건강하시고 행복하셔야 해요^^

머지 않아 뵐 날을 고대하며!*^^*
청소년 10-02-05 23:31
답변  
아버지,어머니
한평생 자식들을 위해 사시는 분이시죠
저희 아빠,엄마 께서도 저와 동생 때문에 산다고 늘 말씀하시죠
그 때마다 무엇이든지 열심히 해서 기쁘게 해 드려야겠다고
매일,,매일 생각하죠
그런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하네요
이제 중 3이 되는데
첫째로서 별 도움도 되지 않는 것 같고
워낙 예뻐해 주셔서 점점 버릇도 없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차리리 모질게 대해 주시면
악으로라도 버티고 서서 열심히 할 텐데,,
정말 이번년도엔 열심히 해야겠어요



야오님 아버지의 명복을 빌어요,, 좋은 곳 가셨을 거예요,^^
swaqny 18-01-08 23:09
답변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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