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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8-06 14:25
남자다움에 치인 남자들
 글쓴이 : 거미군
조회 : 3,965   추천 : 0   비추천 : 0  

드라마 in 정치 2편>>

'남자다움'에 지친 남자들, "결혼은 미친 짓"

필자가 애용하는 편의점에 새 도시락 출시 기념 포스터가 나붙었다. 이름하야 ‘남자 혼자 먹어도 맛있는 도시락’…. 나이가 차도 혼자 사는 독신남이 급기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만큼 많아졌다는 뜻? 누구 말처럼 여자들이야 결혼이 ‘개고생의 씨앗’이니 그렇다손 쳐도, 남자들은 또 왜 결혼의 사각지대로 몰리는 걸까? 얼마 전 종영한 KBS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자. 

 

결혼 못하는 남자… 안 하는 거야, 못 하는 거야?

마흔이 되도록 장가를 못간 조재희씨(지진희 분). 잘 나가는 건축사에 허우대도 멀쩡하니 언뜻 봐선 왜 독수공방인지 이해불가다. 그의 연인이자 주치의인 문정(엄정화 분)의 증언. “그 인간 심성이 삐딱하고, 자기 밖에 몰라요. 병원에 오지 말라는 데도 불쑥불쑥 나타나고, 마음대로 전화해놓고선 지 볼 일 끝나면 툭 끊어버리고…. 그런데 나는 왜 그런 놈한테 말려든 걸까요?” 내 꺼 하자니 까칠하고, 남 주자니 아깝고, 결정적으로 사랑은 좋은데 결혼엔 뜻이 없다. 노처녀 문정의 입장에선 똥 밟았다.

뭐 재희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나는 먹고 싶을 때 먹고, 씻고 싶을 때 씻고, 하고 싶을 때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입니다. 내 공간, 내 시간, 내 생활이 흐트러지면 아무 것도 못 한다고요.” 집안엔 외부인은 물론이요, 심지어 어머니조차 들이지 않는다. 자신만의 왕국에서 혼자 클래식에 심취하며, 정찬을 즐기고, 배 모형을 조립한다. 어찌 보면 혼자가 좋은 것이 아니라 혼자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조재희는.

결혼?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히로인 캐리는 사람들이 결혼하려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안 하면 남들이 이상하게 보잖아.” 그러니 남들의 시선 따위 의식 않는 재희로선 아쉬울 게 없다. 문정이 화도 내보고 달래도 보며 그의 공간을 염탐하지만, 변화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보다 못한 기란(양정아 분)이 한 마디 거들고 나선다. “지구가 깨져도 안 변하는 게 남자야. 세상에 그런 놈 하나쯤 있으면 어때?” 흥, 그거야 속 편한 ‘오피스와이프’ 얘기고, ‘결혼하고 싶은 여자’ 문정은 복장이 터진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재희와 문정이 마음의 문을 열고 해피엔딩으로 끝맺는다. 말다툼 후에 잠도 못자고 두통에 시달리다가 결국 병원에 실려 온 재희. “못됐어. 사람 속 그렇게 긁어놓고 이렇게 아프기예요?” 문정은 이 남자 알고 보니 무척 여리구나, 싶었을 것이다. 마음이 여리기에 자기 방어를 위해 성문을 닫고 사는 게 아닐까. “당신 행복해 보여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나도 그런 세계에서 살고 싶어요.” 됐다, 이제 된 거다. ‘인간 조재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의 문이 열린다. 까짓 거 모성본능에 묻어간 혐의 정도는 모른 체 눈감아 줘야겠지.



‘남자다움’이 힘겨워? ‘초식남’은 어때?

사실 이 드라마엔 ‘결혼 못하는 남자’가 여럿 등장한다. 재희의 업계 라이벌 석환(유태웅 분)도 혼기를 놓쳤고, 나이는 어리지만 현규(유아인 분)도 결혼이 아득하다. 저마다 이유는 있다. 그런데 그 이유라는 것이 ‘이 사회가 요구하는 남자의 자격’과 무관치 않다. 그것을 우리는 ‘남자다움’이라고 부른다.

‘남자다움’의 첫 번째 조건은 경제력이다. 이 점만 놓고 보면 재희는 결혼을 못하는 남자가 아니라 안하는 남자라고 봐야 마땅할 듯. 반면 현규는 유진(김소은 분)과의 미래를 설계할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결혼을 위해선 최소 전세집 정도는 장만해야 할 텐데 건축사 사무소에서 ‘잡일’을 하는 ‘88만원 세대’가 무슨 수로? 한 10년쯤 벌면 희망이 보일까?

유진이 재희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건 순전히 이 아저씨가 몸을 던져 스토커를 물리쳤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친구 말마따나 금값일 때 달려야 한다. 우리 오빠의 친구의 형의 직장동료의 사돈인, 완전 믿을 만한 자리를 향하여! 그것은 어쩌면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이 불황기의 생존본능일 지도 모른다.

다음은 성적 능력. 재희는 마흔 살 연애초짜다. 여자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마음에 둔 여자에게 사랑은 좋지만 결혼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선 그게 배려라고 우긴다. 남녀 간의 신호에 무감각한데다 연인에 대한 예의도 무시하기 일쑤. 석환은 반대다. 이 여자 저 여자 집적거리다 보니 여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안다. 허나 모든 여자에게 잘 할 수 있다는 건,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과 동의어다. 특히 제 인생의 한 여자에겐….

마지막으로 사회적 신뢰도 빼놓을 수 없다. 남자는 자신이 속한 크고 작은 사회에서 좋은 평판을 얻어야 그 ‘남자다움’을 최종적으로 공인받는다. 재희는 자신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고객이나 동료에게 입 바른 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원칙주의자! 길게 보면 틀림없이 신뢰를 얻겠지만 안타깝게도 안티를 대거 양산하는 부작용이 있다. 그래서 남자들은 대개 석환처럼 ‘좋은 게 좋다’, ‘우리가 남이가’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사는 길을 택하는가 보다. 치사하고 더러워도 적을 안 만들어야 먹고 살기 편하니까.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남자다움’에 치인 이 시대 남자들이 조금은 힘겨워 보인다. 차라리 ‘남자다움’ 따위 상구(유진이 키우는 개)에게 줘버리고 ‘초식남’의 물결에 몸을 맡겨보는 건 어떨까? 물론 페미니스트 진영에서 들으면 코웃음 칠 소리긴 하다. 여전히 이 나라는 ‘발기된 남자’들이 지배하는 세상 아닌가 말이다.



대한민국, ‘훈남훈녀’ 천국 되려면…

분명히, 결혼을 하고 못하고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알랭 드 보통의 전언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결혼(핵가족)은 재생산과 사회화에 필수적이며, 상품과 용역의 소비 질서를 유지한다.” 결혼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면 정부도 ‘결혼 못하는 사람들’을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정부는 최근 ‘4대강 사업’에 5년간 22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예비 타당성 조사’마저 생략해 버렸으니 그게 얼마나 경제성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그 돈이면 비정규직 노동자를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고, 모든 대학생의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리 되면 현규가 유진과 결혼해서 애 키우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고, 미래의 대한민국은 이들처럼 ‘훈남훈녀’의 천국쯤 되지 않을까? (끝)

- 2009년 8월 6일 스포츠서울닷컴


노을이 09-08-06 15:30
답변  
후우- 드라마는 도통 어려워서 보기가 힘든..
거미군 09-08-07 10:28
답변  
요즘 드라마 작가들.. 좀 '현란'하긴 하죠ㅋ
열방어미 09-08-08 00:39
답변  
음..  ^^

이 드라마 한번도 안봐서 잘은 모르게지만..  음.. 뭐..  그냥..  총총..  ㅋ

혹시.  동화밖으로 나온 공주..  라는 책..  읽어보셨어요? ^^
거미군 09-08-08 02:03
답변  
"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ㅎㅎ
자기계발 분야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이지만,
책 소개를 보니 구미가 당기는군요ㅋ

문득 이 책의 남성버전 쯤 되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로버트 피셔의 "마음의 녹슨 갑옷"이라는 책인데요,
갑옷에 갇힌 기사가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공주와 기사라..
남녀가 서로 바꿔가며 읽어보면
자신을, 그리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지 싶은데 말이죠^^

올해는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진 않네요..(나만 그런가;;)
그래도, 더위 조심하세요~~ㅋ
이상해씨 10-07-04 00:57
답변  
이거 재밌게 봤었는데~^^ 점점 결혼하기 힘든 세상이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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