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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8-14 12:47
위구르 사태는 한반도의 미래?
 글쓴이 : 거미군
조회 : 2,665   추천 : 0   비추천 : 0  

중화탐구 1편 >>

위구르 사태는 한반도의 미래?



중국 정부에서는 156명이라고 한다. 반면 세계위구르회의는 800명 이상을 주장한다. 지난 7월 발생한 중국 우루무치 유혈사태의 사망자 숫자는 아직도 논란거리다. 확실한 것은 수백 명이 죽고, 수천 명이 부상당했다는 사실.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누가 누구에게 맞아죽어야 한다는 건, 억울한 일이다. 그런데 그 안타까움의 이면에 중국의 치밀하고 야심찬 전략이 숨어 있으니….
 

위구르, 가난하지만 순박한 옛 문명과의 조우

내가 위구르족을 처음 만난 것은 1995년, 그러니까 중국에 어학연수를 갔을 때다. 베이징의  민족대학에는 소수민족 학생들이 많이 다녔다. 몽고족, 조선족, 묘족, 회족, 그리고 위구르족 등등. 운 좋게도 나는 중국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이 나라가 56개 민족이 어울렁 더울렁 삶을 엮어가는 재미난 세계란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아는 중국말이라고는 ‘니하오’, ‘씨에씨에’ 두 단어뿐인 문외한이 전공자들을 따라잡으려면 정규수업과 별도로 개인교습이 필수였다. 내 과외선생은 회족 여학생이었다. 언뜻 보기엔 한족 같지만 자세히 보면 푸른 눈에 오똑한 코가 이국적이었던 아이. 피나는 노력 끝에 겨우 의사소통이 가능해질 무렵 그녀는 자기 민족의 역사를 들려줬다.

회족은 달리 이슬람족이라고도 불리며 고대 페르시아인의 후예다. 그리고 문화적으로 이웃사촌인 위구르족은 고대 투르크인의 한 지파란다. 위구르 사람들은 키가 크고, 갈색 눈에, 매부리코를 하고 있었다. 민족대학 바로 옆이 위구르족의 집단 거주지, 웨이공촌(魏公村)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일상을 접하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학교 후문을 나서면 위구르족의 시장. 그곳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양이란 동물과 조우했던 기억이 난다. 천생 촌놈인 내가 한국에서 양을 봤을 리 있을까? 놈들을 처음 보고 호기심에 달려든 나는, 그러나 충격적인 장면에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세상에 백주대낮에 그것도 사람들이 북적대는 시장 통에서 양의 배를 가르다니….

그랬다. 위구르족에게 양이란 녀석들은 (식)생활을 의미했던 것이다. 고로 그날 양과의 첫 조우는 이른바 생활의 발견이었던 셈. 위구르족은 돼지, 개, 말고기를 안 먹는 대신, 양고기를 잘게 썰어 이슬람식으로 요리한 다음 '난'(옥수수를 반죽해 만든 빵)을 곁들여 먹는다. 충격이 컸던 탓인지 양고기는 별로였지만 둥글 넙적한 난은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시장 통을 오가는 위구르인들의 얼굴은 우울한 회색빛이었다. 뭔가 불만이 있는 듯 입을 굳게 다문 채, 눈은 딴 생각에 빠진 사람처럼 허공을 응시했다. 아니, 어쩌면 한족 친구들에게서 입수한 사전정보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위구르족을 가까이 하지 마. 무슨 짓을 당할 지도 몰라.”

한족 학생들이 묘사하는 위구르인은 도둑이나 소매치기 아니면 마약상이었다. 위구르 상인이 파는 양고기 꼬치구이 역시 마약을 푼 물에 담갔다가 구워낸 것이니 조심하라고 했다. 한 번 두 번 사먹다 보면 가랑비에 옷이 젖듯 자신도 모르게 중독돼 신세를 망친다는 것. 하지만 내 눈에 비친 위구르 사람들은 가난하긴 했지만 순박해 보였다.

우루무치 유혈사태, ‘투르크 정신’의 부활을 막아라!

대학시절 역사를 전공한 나에게 실크로드는 언젠가 꼭 순례해야 할 미지의 성지다. 서안을 출발해 난주, 돈황을 거쳐 옥문관을 넘으면 끝도 없는 사막이 나타난다.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곳, 타클라마칸…. 그 너머에 열사의 도시 '투르판', 거대한 목장 '우루무치', 향비의 고향 '카슈가르'가 있다. 오늘날의 신장위구르자치구다.

사실 이 지역은 터키어를 사용하고, 이슬람 종교를 믿으며, 실크로드를 장악했던 ‘투르크 문명’의 동쪽 끝이다. 실제로 1949년 중국에 먹히기 전 이곳에 존재했던 나라 이름도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이었다. 위구르 독립운동은 그래서 단순한 테러리즘 정도로 매도하기 어렵다. 자신의 언어, 문화, 역사를 지키고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투르크 정신’의 표출이다.

근세 이래 러시아 등 열강의 지배를 받던 투르크 민족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더불어 제각각 독립정부를 수립했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키르기스스탄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중앙아시아에 투르크 벨트를 형성하며 투르크의 맹주 터키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해왔다. ‘투르크 정신’의 부활! 이제 다른 문명,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는 건 동투르키스탄, 즉 위구르인들 밖에 없다.

중국정부가 위구르 유혈사태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같은 문명사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소수민족 독립운동 하면 티베트를 떠올린다. 그러나 티베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분지에 고립돼 있다. 작년에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지만 중국 정부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폭력적으로 진압해버렸다.

반면 지난 7월 위구르 유혈사태가 벌어지자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G8 정상회담 도중 급거 귀국하는 등 사뭇 심각하고 신중하게 사태해결에 나섰다. 중국이 소수민족의 분리주의 운동을 응징하며 이렇게 외신을 위한 언론플레이에 공을 들인 적이 있었던가? 중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위구르의 배후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투르크 공동체 운동’이다. 중국 정부로서는 바람이 일기 전에 뿌리를 뽑을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중국의 대응이 일부 먹힌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진하고 있는 중국의 국제위상으로 인해 서방세계가 중국의 인권문제를 대놓고 거론하기 어려운 탓이다. 2013년경 3조 달러(약 4000조원) 규모에 이를 중국 내수시장은 세계경제의 구세주다. 게다가 미국은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등 테러세력이 같은 이슬람 형제인 위구르와 결탁할까봐 노심초사다. 아니꼽지만 위구르 문제만큼은 중국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노릇.

21세기 중화제국의 전제조건은 내부분열 극복

그렇다면 중국이 신장위구르자치구에 집착하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 왜 한족을 이주시켜 수적 우위를 만들고, 위구르족의 정체성을 말살하려 드는 걸까? 물론 이 지역이 세계적인 면화산지이자 지하자원의 보고인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더 크고 중대한 이유는 ‘21세기 중화제국’으로 비상하려는 중국의 야심일 것이다.
 
역사는 말한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었다. 때때로 이민족의 지배에 시달려왔지만, 오히려 중화사상의 용광로 속에 이민족을 녹여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20세기는 중국인에게 치욕의 시대였다. 생산력 저하에 다른 경제적 빈곤은 중국인의 자부심을 처참하게 짓밟았다.

개혁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 전주석이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것도 그래서다.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뜻. 현대 중국인들은 1990년대까지 이 네 글자를 마음 깊숙이 갈무리하며 지난한 세월을 견뎌냈다. 그리고 21세기가 되자 지속적인 고도성장과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감춰둔 발톱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후진타오 주석은 2003년 말에 ‘화평굴기(和平崛起)’를 언급하고, 2004년부턴 ‘유소작위(有所作爲)를 외치더니, 최근엔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본격 거론하기 시작했다. 풀이를 해보면 세계 평화 속에서 우뚝 솟겠다고 했다가, 국익을 확대하기 위해 적극적인 국제문제 개입을 선언하더니, 이제는 경제 뿐 아니라 국방 면에서도 위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대외정책은 이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공세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현재 세계경제 상황에서 중국을 자극하는 행위는 점점 더 터부시 되고 있다. 중국이 21세기 중화제국으로 화려한 비상을 하는 데 있어 남은 변수는 국내문제, 즉 내부의 갈등과 분열뿐이다. 중국정부는 중국적인 가치관을 정립해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이를 외부로 확산시키며 중화제국의 꿈을 차근차근 실현해 나가고 있다.
 
근래 들어 중국은 이미 역사적 소임을 다한 공산주의 대신 중화 민족주의를 의도적으로 조장해왔다. 특히 독자적인 언어, 문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문명권과의 경계에 있는 지역이 집중 타깃이다. 대표적으로 신장위구르에서 티베트로 이어지는 ‘서남벨트’와 동북3성에서 내몽고를 잇는 ‘동북벨트’를 들 수 있다. 이들 지역에선 소수민족의 삶이 배인 언어, 문화, 역사를 중화 민족주의로 대체하는 연구도 병행되고 있다. ‘서남공정’과 ‘동북공정’ 말이다.

한반도 넘보는 중화 민족주의… 대비책은?

이렇게 본다면 위구르 사태를 지켜보며 한반도의 미래를 염려하는 것이 과연 기우일까? 한반도는 알타이 어족 계열의 유서 깊은 문명을 꽃피운 곳이다. 중국의 입장에선 투르크 문명과의 접점인 신장위구르만큼이나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지역이다. 과거 고구려사 논쟁을 촉발시켰던 동북공정을 예로 들어보자.

동북공정은 단순한 학술연구가 아니다. 명백히, 중화제국 실현을 위한 정치포석이다. 중국은 우선 한반도와의 접경인 동북3성의 사상문화 통합과 역사적 연고권을 확립하고 있다. 다음으로 북한난민 유입문제, 통일한국 국경문제, 간도지역 영토문제 등 한반도와 연관된 모든 가능성에 대해 사전 정지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한반도의 미래에 언제든 개입할 수 있는 명분들이 생긴다는 뜻.

역대 중화제국은 ‘기미(羈縻)’를 대외정책의 원칙으로 삼아왔다. ‘굴레를 씌우듯 얽매고 구속하는’ 방법으로 주변국들을 중국의 세력범위 안에 묶어두고 통제하는 정책을 취했다. 현재 중국에게 식량과 에너지를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북한은 사실상의 속국이나 다름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중국과의 교역으로 무역수지 적자를 메우는 한국은 또 어떤가? 

중화라는 국가관이 만든 ‘허구적 민족’에게 우리의 언어, 문화, 역사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중화 민족주의의 확산에 대비해야 한다. 위구르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50년 후 중국을 여행하는 이름 모를 길손이 한민족을 가난하지만 순박한 옛 문명쯤으로 기억하도록 방치할 것인가? (끝)


- 2009년 8월 14일 블로그언론 Post9

야오 09-08-21 06:11
답변  
내가 미래에 대해서 젤(어쩌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게 이 문제라는 거 몇 번 얘기했잖아. 남편은 쏘쿨한 태도로 신경 쓸 거 없어~ 그러지만 언제나 중국이 마음에 걸려있었는데 좋은 글 고맙다. 공부의 씨앗을 하나 건졌네. 다음에 얘기 좀 더 하자.
근데 나 너의 타클라마칸이 거기 있는 건 줄 몰랐다. 내몽고인 줄 알았어. 무식이 죄다. -_-;;;
거미군 09-08-21 19:38
답변  
ㅋㅋ 무식이 죄는 아니지~~
내몽고엔 고비사막과 쿠부치가 있단다^^

오마이 연재 첫회라 좀 과장하긴 했지만,
이제 중화민족주의에 대한 연구를
좀 빡세게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ㅎ

그나저나,
쏘쿨한 형님의 태도는 언제나 부럽다는..
난 언제쯤 신선의 경지에..ㅠㅜ(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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